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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y sera7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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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평범한 열 살 소녀 치히로는 부모님의 직장 문제로 인해 익숙한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 짐을 가득 싣고 흐느적대며 달리는 동안, 치히로는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친구들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이 뒤섞인 채, 그녀는 무기력하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도로를 벗어난 작은 오솔길, 끝없이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던 도중, 가족은 수상한 터널 앞에 다다른다.

그 터널은 겉으로 보기엔 오래된 폐역이나 버려진 공공건물 같아 보였지만, 안에서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마치 또 다른 차원이 열려 있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치히로는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주저하지만, 부모님은 호기심에 가득 차 이끌리듯 터널로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치히로도 그 뒤를 따라가게 되고, 터널 끝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는 마치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국적인 마을이 펼쳐진다.

넓게 트인 초원과 붉은 지붕을 가진 건물들, 텅 빈 거리와 풍성한 음식 냄새가 퍼지는 상점가가 마치 유령마을처럼 조용하게 그들을 맞이한다. 부모님은 빈 식당가 중 한 곳에서 무인 상태로 차려진 진수성찬을 발견하고, 주저함 없이 앉아 먹기 시작한다. 치히로는 처음부터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그 마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저녁노을이 사라지며 도시의 기운은 사라지고, 하늘은 진한 남색으로 물든다. 거리에는 괴이한 모습의 신들과 영적인 존재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그 조용했던 공간은 왁자지껄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다. 겁에 질린 치히로는 부모님에게 달려가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탐욕스럽게 음식을 먹었던 부모님은 어느새 돼지로 변해 있었고,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울타리 안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절망 속에 홀로 남겨진 치히로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발을 들인 이 세계가 인간이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망치려 하지만 몸은 점점 투명해지고,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녀 앞에 한 소년이 나타난다. 이름은 하쿠. 그는 치히로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녀를 이 세계에 적응시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름을 주고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를 신들의 목욕탕 ‘유바바’의 시설로 데려간다.

유바바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마녀이자 욕망의 화신과 같은 존재로, 모든 계약과 규칙을 통해 사람들의 이름을 빼앗고 그 존재마저 장악한다. 치히로는 유바바와 계약을 맺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점차 잃어가는 위험 속에서 고된 노동을 시작하게 된다. 더럽고 이상한 손님들을 상대하고, 온갖 괴이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며 치히로는 점차 강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울기만 하던 소녀였던 치히로는 점차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잊지 않으려 애쓰며, 부모님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하쿠의 정체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의 과거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어느 강의 신이자 소중한 인연의 존재가 바로 하쿠였음을 깨닫는다. 하쿠 또한 진짜 이름을 잃고 유바바에게 지배당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치히로는 위기 속에서도 용기와 진심을 잃지 않으며, 고난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하쿠에게 진짜 이름을 되찾아주고, 유바바와의 마지막 대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구하기 위한 시험 앞에서도 치히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며, 결국 부모님과 함께 이 세계를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된다.

터널을 다시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치히로는 여전히 그 낡은 길목에 서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진정한 성장을 이루었고, 앞으로 어떤 변화와 이별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되었다.

나의 감상평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단순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상징과 감정들이 하나씩 마음속에 스며들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치히로가 부모님과 함께 낯선 시골로 향하던 길목에서 터널을 발견하고, 무심코 그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은 단순한 시작이 아닌, 이 세상과 또 다른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자 성장의 문턱처럼 느껴졌다.

치히로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 속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혼자 남겨진다.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돼지로 변해버리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고, 동시에 우리 삶 속에서 어른들이 얼마나 자주 아이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인간이 감히 침범해서는 안 되는 ‘신들의 세계’에 홀로 남겨진 치히로는 단순히 부모를 구하는 소녀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인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처음엔 울고 겁먹고 무기력해 보였다. 그러나 점점 이질적인 세계 속에서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진짜 성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자아를 잃고 타인의 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고,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쿠와의 관계도 인상 깊었다. 서로의 진짜 이름을 찾아주는 장면은 단순한 기억의 회복이 아니라, 잊혀졌던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었다.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이름’과 ‘기억’이라는 테마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치히로의 모험을 단순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게 만들어 준다.

결국 치히로는 부모님을 되찾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때의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단기간의 모험이었지만, 그 여정 속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그녀를 성장하게 했고, 보는 나에게도 어떤 변화의 씨앗을 남겼다. 어쩌면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소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지나야 할 인생의 통과의례 같은 이야기였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며, 스스로를 지켜내는 과정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 이야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래서 아이를 위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른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삶 속에서 어느새 잊어버린 나의 이름, 나의 모습, 나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 문득 현실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유혹과 환상으로 가득한지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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